“트로트의 유산은 이어진다. 영웅은 정말 난세에 등장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어수선하던 2020년 1월 2일.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첫 방영을 시작했다.”
“시원섭섭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원하지도 서운하지도 않습니다. 평생 걸어온 길의 끝이 보이는 마지막 공연에 남은 혼을 모두 불태우려 합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58년 차 가수가 은퇴 무대를 앞두고 전한 짧은 편지는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선언문 같았다. 데뷔 이래 나훈아가 발표한 노래는 무려 1200곡이 넘지만, 1990년대에 태어난 나는 그의 노래를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후배 뮤지션들이 다시 부르는 그의 노래로, 여러 매체에서 쏟아내는 그에 대한 찬사로, 코로나로 전 국민이 좌절했을 때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준비했다던 콘서트로를 보며 그가 어떤 가수인지 짐작했을 뿐이다.
트로트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장르다. 일제강점기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은 일본 엔카의 그늘에서 벗어난 전통 가요로서 한국 최초의 트로트 곡으로 평가된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대중가요계에선 ‘트로트’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나훈아가 전국 스타로 발돋움하며 ‘한국 트로트’의 뿌리를 다졌다. 그렇게 만개했던 트로트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올해 2월, 가수 송대관이 세상을 떠났다. ‘트로트 4대 천왕’이라 불린 그의 영결식에는 동료 가수들이 모여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를 외쳤다. ‘해뜰날’은 송대관의 오랜 무명 생활을 끝낸 히트곡이자, 그가 살아생전 가장 좋아했던 노래다.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나훈아의 유일한 라이벌, 가수 남진이 데뷔 60주년을 맞아 올해 3월부터 전국 투어를 시작한 것이다. 트로트의 첫 시대를 장식한 전설들은 그렇게 저마다 마지막 장을 매듭짓고 있다.
트로트의 유산은 이어진다. 영웅은 정말 난세에 등장했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어수선하던 2020년 1월 2일.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첫 방영을 시작했다. ‘5천만 국민의 가슴에 둥지를 틀 대한민국 최고의 트롯맨’을 찾는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트로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총 참가자 100인은 저마다 부푼 꿈을 안고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2개월 뒤, 우리는 또 한 명의 슈퍼스타 탄생을 목격했다. 임영웅은 착한 청년이었다. 그는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 군고구마 장사를 하던 중에도 기부를 놓지 않았다. 정작 자신은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겨울이면 연탄을 나르며 땀을 흘리던 청년이었다. 그런 임영웅은 이제 트로트뿐만이 아닌 한국 대중가요계를 대표하는 얼굴로 우뚝 섰다.
대중음악의 용광로
처음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보았을 때는 스타 등용문이라기보다 패자부활전처럼 느껴졌다.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한 이들이 아닌, 실력이 익을 대로 익었지만 아직 빛을 보지 못한 가수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자부활전’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가수 영탁을 만난 적 있다. 그 역시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낳은 간판스타로, 임영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인터뷰이로 만난 그에게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건넸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해야겠다 결심하던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때 영탁이 해준 말은 내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전향이라는 말이 참 애매한 점이 있어요. 유독 다른 장르를 하다 트로트 앨범을 내면 전향이라는 표현이 붙는 듯해요. 힙합 하시는 분이 발라드 앨범을 낸다고 ‘발라드 가수로 전향했다’고 하지는 않거든요. 젊은 가수가 트로트를 부르면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실패해서 이쪽으로 어쩔 수 없이 건너왔다’는 느낌으로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있고요.”
맞는 말이다. 트로트는 오랜 기간 ‘뽕짝’으로 불리며 대우받지 못했다. 오죽하면 나훈아는 현역 시절 “난 ‘뽕짝 가수’가 아닙니다”라며, 자신이 몸담은 장르 음악을 ‘트로트’ ‘뽕짝’이 아닌 ‘아리랑’으로 대체하자고 제안했을까. 영탁의 원래 전공은 재즈다. 그는 대학원에서 재즈를 공부했고, 그 후로 발라드, 록, R&B, 랩까지 거치지 않은 장르가 없는 베테랑이다. 그는 트로트를 부른 이유에 대해 “음악 생활을 오래 하면서 새로운 장르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장르가 트로트여야 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트로트가 더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트로트는 대중음악의 용광로다. 앞서 언급한 임영웅과 영탁 모두 처음에는 발라드로 출발했다. 최근 종영한 <미스터트롯3>에는 ‘발라드 황태자’로 불리던 가수 이지훈, 오랜 기간 R&B 가수로 활동한 이정(천록담)이 참가해 화제를 모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트로트만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트로트에는 포크, 국악, 록, 재즈가 모두 녹아 있다. 여러 장르가 한데 섞이면서 소비층도 다양해졌다. 나훈아 시대의 트로트는 줄곧 윗세대 음악이었다. 시골 장터에서 시끌벅적 흘러나오거나, 어르신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 갈 때 듣는 음악. 아무리 개성 시대가 왔다고 해도 트로트를 듣는 젊은 세대를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미스터트롯>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젊은 트로트 가수를 대표하는 이찬원, 영탁은 멜론에서 모두 20억 회 이상 스트리밍을 기록 중이다. 영탁이 세운 24억326만 스트리밍 횟수는 7인조 보이 그룹 NCT 드림과 싱어송라이터 크러쉬보다 높은 숫자다. 이들은 공연예술 문화도 바꾸고 있다. 요즘 트로트는 ‘듣는 장르’에서 ‘참여하는 장르’로 넘어가는 과도기다. 임영웅이 콘서트를 열 때마다 전국 수십만 불효자가 생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서 발표한 ‘2024 공연 시장 티켓 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가수는 임영웅이다. 지난해 공연 시장 티켓 판매액 상위 20개 공연 중, 6만607석 규모의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펼친 아티스트는 단 3명이다. 임영웅은 아이유와 세븐틴을 제치고 대중음악 가수 중 가장 높은 판매 수익을 올렸다. 더욱 눈여겨볼 점은 연령층이다. 2023년부터 21회에 걸쳐 진행한 임영웅 ‘IM HERO’ 전국 투어는 총 22만 명의 관객이 찾았다. 그중 최연소 관객은 10세, 최고령 관객은 100세였다. 10세 어린이와 100세 노인을 한 공간에서 열광하게 만드는 장르는 트로트가 유일하다.
숫자로 보는 오늘의 트로트
21세기 트로트 히트곡 20
선정은 음원 판매량이 아닌, ‘비트로트’ 팬에게도 가장 익숙하게 느껴질 곡들로 진행했다.
멀티히트를 기록한 가수들도 많았지만, 세대 변화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가수마다 한 곡씩 선정했음을 알린다.
“한국 트로트는 그 지평을 넓혀가는 중이다.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키고, 여러 장르를 버무리며, 모든 세대를 설득시킨다.”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고 간다
“소풍처럼 살아봐. 소풍 같은 인생. 좋잖아.” 어느 날 아버지가 내게 건넨 말이다. 덜컥 겁부터 났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읽지 않던 책을 읽기 시작했나, 심정의 변화라도 생겼나 싶어 한동안 마음이 뒤숭숭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말한 ‘소풍 같은 인생’은 트로트 가수 추가열의 ‘소풍같은 인생’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트로트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나는 노래로 한국어를 배운다면, 가장 좋은 장르가 트로트라고 생각한다. 트로트는 늘 그래 왔다. 있는 그대로를 노래한다. 때로는 화려한 수식으로 가득 찬 문장보다, 어린아이가 일기장에 써 내려간 글들이 더 큰 감동을 준다. 트로트는 후자에 가깝다. 제목도 가사도 멜로디도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에서 오는 힘이 있다. 다짜고짜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형!’이라 부르면서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말할 수 있는 것이 트로트의 힘이자 매력이다.
실제로 외국인에게 트로트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매주 목요일 전 국민의 화제를 모으던 시기, 문득 트로트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은 이 무대를 어떻게 느낄지 궁금했다. 당시 나는 외국계 매체 <하입비스트>에 다니고 있었고, 외국인 동료들에게 TOP5 무대를 보여주며 후기를 들었다. 북미에서 자란 한 동료는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무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그가 부른 노래는 아주 슬픈 카우보이 컨트리 뮤직을 떠올리게 했다.” 다른 동료에게는 ‘찬또배기’라는 별명을 안겨준 이찬원의 ‘진또배기’ 무대를 보여주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와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 무대는 와일드했다. 심사위원들의 리액션에서 흥분이 느껴졌고, 난 언어의 장벽을 넘을 수 있었다. 이 가수가 지닌 에너지와 자신감에는 전염성이 있다. 그의 목소리는 엄청나게 파워풀했으며, 신나는 음악과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난 1950년대 스타일의 스트라이프 수트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가 입은 수트는 최소 두 치수 작아 보였다.” 이찬원의 수트 핏을 지적한 그는 영탁의 ‘막걸리 한잔’ 무대를 보며 자신의 추억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이 무대는 정말 매끄러우면서도 소울풀했다. 이 곡에서는 확실히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분위기가 났는데, 가수의 목소리는 관중을 황홀하게 했다.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나를 놀라게 했고, 그는 훌륭한 방법으로 곡 안에서 정신을 놓았다. 그나저나 수트에 학교 엠블럼을 매단 건가? 난 그의 의상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한국 트로트가 머지않아 미국 컨트리 뮤직처럼 소비될 거라 기대한다. 컨트리 뮤직이 오늘날 미국을 대표하는 장르가 되기까지는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 새로운 장르의 유입이 큰 몫을 해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뮤지션, 테일러 스위프트는 컨트리 뮤직을 팝의 영역으로 확대시키며 인기를 얻었다. 올해 2월에는 가수 비욘세가 컨트리 앨범 <Cowboy Carter>로 첫 그래미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그래미 어워즈 역대 최다 후보 지명인 비욘세가 다름 아닌 컨트리 앨범으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트로트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도, 홀대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젊은 세대는 기어이 사그라든 불씨를 키워 오늘의 트로트 붐을 만들어냈다. 한국 트로트는 그 지평을 넓혀가는 중이다.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키고, 여러 장르를 버무리며, 모든 세대를 설득시킨다. 어느 순간 ‘힙합 트로트’ ‘재즈 트로트’ ‘클래식 트로트’ 같은 새로운 이름의 장르가 등장해도 새삼 놀랄 것 같지는 않다. 수만 명의 관객에 둘러싸여 트로트를 부르는 젊은 가수를 볼 때마다 오래도록 회자되던 말이 떠오른다. 이왕 가는 세월 끌려가지 않겠다던, 지금부터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가겠다던 말. 어쩌면 그 말을 남긴 나훈아 선생께서는 이미 편한 마음으로 은퇴를 즐기고 있을지 모르겠다. 트로트의 새로운 아침은 이제 막 시작됐으니까.
<미스터트롯3>의 주역, 김주연 메인 PD와 나눈 트로트 이야기
“좋으면 좋다고, 아프면 아프다며 있는 그대로를 노래하는 것.
그점이 트로트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트로트 인기의 중심에는 <미스터트롯>이 있습니다. PD님께서 바라본 <미스터트롯>이 성공한 이유를 3가지만 뽑는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첫 번째는 진심. 참가자들이 노래는 물론, 자기 인생을 고스란히 무대 위에 풀어냈거든요. 기술보다 감정, 화려함보다 진심이 더 크게 다가온 무대들이 많았어요. 말 그대로 ‘노래로 사람을 본다’는 경험이었달까요. 두 번째는 새로움. 자칫 올드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장르를 다양한 세대의 참가자들이 각자 자기 스타일로 멋지게 풀어내면서 낯익은 장르를 낯설게, 그리고 세련되게 보여줬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좋아하던 트로트를 자녀 세대도 함께 즐기는 풍경이 자연스러워졌죠. 마지막은 예측 불가였죠. 매회 무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고, 감동과 웃음, 반전이 섞여 있어서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기대감이 늘 있었습니다. 흐름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 덕분에 시청자도 끝까지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했던 것 같아요. 예측은 늘 틀렸고, 감정은 늘 터졌죠. 그게 바로 트로트인가 봐요.
<미스터트롯3>는 전작의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전달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심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많이 고민한 건 ‘원조는 어떻게 원조다움을 보여줄 수 있을까’였습니다. <미스터트롯>은 단순한 음악 오디션이 아니라, 흥이 넘치고 다양한 참가자들이 함께하면서 감동, 재미, 이야기, 반전을 전해주며 오감을 자극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었죠. 하지만 시즌1 이후 트로트 프로그램이 워낙 많아지면서 시청자도 ‘이게 미스터트롯이었나?’ 헷갈릴 정도가 됐어요. 장르 자체에 대한 피로감도 생긴 시점이었어고요. 그래서 처음 감성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대 자체와 참가자에게 집중하는 원조의 분위기는 그대로 가져가되, 새로운 장치를 그 위에 살짝 얹어서 변화를 주는 방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예선에서는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현역부X(블라인드 부서)’, 본선에서는 ‘주부 해방의 날’ 같은 키워드로 새로움을 더했고, 준결승은 오직 정통 트로트로만 겨루는 ‘정통 트롯 대전’을 통해 무게감 있는 대결을 연출하려 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패턴이 쉽게 읽히지 않도록, 다채로운 흐름을 유지하면서도 <미스터트롯> 특유의 감동과 흥은 놓치지 않으려 했고요. 아주 소소한 장치지만, 무대 시작 전에 “미스터~”라는 오디오를 꼭 넣었어요. ‘이건 <미스터트롯>이다’를 계속 인식시키는··· 가스라이팅 아닌 가스라이팅이랄까요?
개인적으로 이번 <미스터트롯3> 101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참가자는 누구였나요?
<미스터트롯3> TOP7 무대는 사실 다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인생곡 미션’에서 TOP7 모두가 눈물을 보였는데, 무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여운이 남은 장면이라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사실 TOP7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기억하실 거라 생각해요. 그 외에 생각나는 두 분을 꼽아보자면 최연소 참가자 유지우, 그리고 최고령 참가자 이생노 선생님이에요. 여덟 살 유지우 군을 처음 봤을 때는 ‘이 작은 아이가 큰 무대에서 어떻게 노래를 하지?’ 싶은 조바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무대마다 제 걱정을 보기 좋게 뒤집었죠. 그 순수한 목소리 하나로 관객 500명과 심사위원을 웃기고 울렸던 메들리 미션 무대는 정말 ‘레전드’였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리허설도 제대로 못 했었는데, 실전에서는 최고의 무대를 보여줬습니다. 심사위원도, 관객도, 모든 스태프들의 입에서도 “쟤는 천재다”라는 말이 터져나온 게 기억납니다. 지우야, 넌 우리 모두의 보물이었어. 사랑한다. 그리고 또 한 분. 이생노 선생님은 이번 시즌 최고령 참가자셨죠. 나이 제한을 폐지하면서 신설된 OB부에 참여하셨는데요. 무대 위에서의 에너지와 활력은 일흔네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무대에서 보여준 퍼포먼스와 긍정적인 에너지는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고요. 무대 밖에서는 OB부 참가자들을 넘어 다른 참가자에게도 틈틈이 간식을 건네며 활기를 불어넣으셨어요. 지금도 참가자들과 친구처럼 연락하며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고 생각했답니다. 생노 선생님, 존경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두 참가자가 이번 <미스터트롯3>에서 보여준 건 순수함과 삶의 깊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참가자들의 모습 덕분에 <미스터트롯3>는 단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101가지 얼굴을 가진 이야기가 됐습니다.
역대 <미스터트롯> 우승자인 임영웅, 안성훈, 김용빈은 오랜 무명 기간을 거쳐 떠올랐다는 서사가 공통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세 참가자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공통된 비결은 무엇일까요?
세 참가자 모두 무대에 설 때마다 단순히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전한다’라는 느낌을 줬어요. 눈빛, 목소리, 숨소리. 그 모든 것에 감정이 실렸고, 시청자도 그걸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실 저는 ‘막귀’에 가까운 사람이거든요. 그럼에도 세 참가자의 노래는 듣는 순간 ‘확실히 다르다’라는 게 느껴졌어요. 그만큼 실력은 말할 것도 없는 분들이고요. 무엇보다 3명의 우승자는 경연을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닌, ‘자기 이야기를 표현하는 무대’로 바라봤습니다. 그 진심과 균형이 결국 우승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PD님께서 느끼는 트로트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트로트의 매력은 음악을 잘 몰라도 귀에 꽂힌다는 점 아닐까요? 가사 한 줄에 마음이 찡하고, 마음이 들썩이는. 웃다가 울고, 울다가 또 웃게 되는 롤러코스터 같은 음악이더라고요. 트로트는 뱅뱅 돌려 말하는 법이 없죠. 좋으면 좋다고, 아프면 아프다며 있는 그대로를 노래하는 것. 그점이 트로트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로트’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라고 합니다. 이전의 트로트 가수를 1세대라고 칭한다면,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 이후의 가수들이 2세대 아닐까 생각하는데요. 1세대와 2세대 트로트 가수의 또렷한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1세대와 2세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표현 방식’이에요. 1세대 트로트 가수들은 장르의 정통성과 깊이를 만들어낸 세대라고 생각해요.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한 삶의 무게와 진심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여전히 근사하죠. 반면 2세대는 그 감정을 보다 자유롭고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세대예요. 댄스, 발라드, 심지어 록까지 트로트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어요. 무대 구성은 물론 퍼포먼스, 스타일링까지 굉장히 입체적으로 바뀌었죠. K-팝 아이돌 못지않은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비 방식도 달라졌죠. 과거의 트로트 가수가 ‘TV에서 보는 가수’였다면, 지금은 ‘콘서트 가고, 굿즈 사고, 버블로 같이 소통하며 덕질하는 가수’가 됐으니까요. 팬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시대가 된 거죠. 결국 1세대는 토대를 빚은 세대, 2세대는 그걸 세련되게 확장한 세대라고 생각해요. 예전의 트로트가 ‘찡’하게 울리던 음악이었다면, 지금은 ‘찡’하면서도 ‘팡’ 터지고 때로는 ‘헉’ 소리 나게 만드는 장르가 된 거죠.
트로트는 국내에서 티켓 파워가 가장 강한 장르이기도 하죠. PD님께서 트로트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전국 어디를 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어요. 대도시부터 작은 시골 마을에 가더라도 “이 노래 불렀었지?” “○○이 그때 무슨 알바 했었잖아” “그 친구 엄마가 뒤에서 눈물 흘렸잖아”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시더라고요. <미스터트롯> 참가자는 방송 제작진보다 시청자분들이 더 잘 기억하세요. 그 모습을 보면서 트로트는 한 사람의 노래와 삶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껴안아주는 장르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트로트 가수의 특징이라면 ‘트로트만’ 부르지 않는 점일 것 같습니다. 실제로 <미스터트롯3>에서도 참가자들이 다양한 장르를 커버했는데요. 반면 사운드와 창법 면에서는 1세대와 2세대 간에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세대를 불문한 ‘트로트’의 공통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요즘 트로트는 장르적으로 정말 많이 넓어졌죠. 국악, 댄스, 록의 요소가 섞이는가 하면, 서커스를 방불케 할 정도로 오감을 자극하는 무대도 많아졌고요. 그만큼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완전히 색깔이 다른 트로트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요즘은 트로트 무대 보면서 박수 치다가 숨 고르기 바쁠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한 가지 느낀 점은 있습니다. 트로트를 트로트답게 만드는 ‘결’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여전히 흐른다는 점. 어떤 세대든, 어떤 장르를 더하든, 기쁨은 더 기쁘게, 슬픔은 더 슬프게, 감정을 진하게 담아서 전달하는 방식. 한 줄 가사에도 마음을 휘청거리게 하는 리듬. 결국 트로트는 형식보다 감정과 정서가 중요한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이야기를 어떻게 품느냐가 트로트의 본질인 거죠.
만일 트로트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외국인에게 ‘트로트’를 알려준다면 어떻게 설명하까요?
저라면 이렇게 설명할 것 같아요. “트로트는 스튜예요.” 겉으론 단순하고 익숙해 보이지만, 오래 끓일수록 국물처럼 감정이 깊어지고, 천천히 음미하다 보면 가사 속 재료 하나하나에서 저마다의 이야기가 느껴지거든요. 처음엔 그저 구수하다가도 시나브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묘하게 울컥하게 되는 음악. 한 번 스며들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음악. 그게 트로트죠.
동시에 ‘오늘의 한국 트로트’를 설명하기 위해 가수 3명의 무대를 보여준다면 누구를 선정하시겠습니까?
첫 번째는 나훈아 선생님의 ‘물레방아 도는데’.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곡이죠. 대한민국 트로트의 뿌리와 정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무대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부르는 나훈아 선생님 특유의 창법은 여전히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트로트는 이런 것이다’ 정의하는 곡이죠. 두 번째는 임영웅의 ‘영영’.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걸 넘어, 감정을 ‘머무르게’ 만드는 무대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모범답안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이 ‘트로트가 이렇게 세련될 수 있구나’ 처음 체감한 순간이기도 했고요. 마지막으로는 김용빈의 ‘감사’. 경연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서사, 목소리, 표정, 진심. 그 모든 요소가 빠짐없이 담긴 무대였어요. ‘트로트의 오늘이 여기에 담겨 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재미있는 사실은 세 무대가 모두 나훈아 선생님의 곡이라는 점이에요. 한 사람의 노래가 삼 세대를 통해 다시 불리고, 그 감정이 시대마다 다르게 해석되고 전달되는 걸 보면서 트로트 장르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트로트가 인기를 이어가기 위해선 업계 안팎으로 필요한 점이 있다면요?
K-팝도 생각해보면 1세대 아이돌부터 지금 4세대까지 수많은 시도와 확장을 거치면서 결국 전 세계를 뒤흔드는 문화가 됐잖아요. 트로트도 지금의 2세대를 지나, 3세대로 넘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흐름을 이어가려면, 더 다양한 창작자와 장르 간의 접점이 생기고, 팬덤과 대중이 함께 즐기는 포맷도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람하는 장르’가 아니라 ‘참여하는 장르’가 되어야 하니까요. 업계 차원에서도 트로트 오디션의 열기를 이어갈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생산돼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참가자가 노래로 응답하는 스핀오프 프로그램 <사랑의 콜센타 세븐스타즈>가 5월 1일부터 방송됩니다. 이번엔 시청자와 더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로 준비하고 있어요. 트로트는 아티스트와 함께 ‘늙어가는 것’이 아닌 ‘익어갈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젊은 트로트 가수와 팬들이 함께 어우러진 채로 시간이 쌓인다면, 트로트만이 간직한 시간의 미학이 더욱 빛을 발할 거라고 믿습니다. 결국 오래된 게 아니라, ‘잘 익은’ 것임을 계속 증명해내야 하는 시점이죠. <미스터트롯3>의 슬로건처럼, K-트로트 한류의 위대한 첫걸음은 이제 진짜 시작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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