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돼서 사람들한테 알려지면 빠르고 효과적으로 내가 바라던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게는 착하게 살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죠?”
<보물섬> 14화가 순간 최고 시청률이 16.1%를 넘으면서(촬영일 기준) 자체 최고 기록을 경신했어요. TV 드라마가 녹록지 않은 시대에 엄청난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개인적으로도 기분이 좋지만 많이 고생한 선배님,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좋아하실 모습이 눈에 선해서 기뻐요. 결과가 수치로 보이니까 현장에서 애쓴 만큼 보람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스토리만큼 현장도 쉽지 않았군요.
현장 분위기는 좋았어요. 다들 유쾌해서 촬영장 가는 건 즐거웠는데 내용이 버거울 때가 있었어요. 연기하면서 감정적으로 몰아치는 부분이 힘들었죠. 저희끼리 사진 찍고 수다 떨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게 아쉽긴 해요.
극에 몰입하기 위해서였나요?
만나면 주로 촬영하는 신에 대해 진지하게 회의했어요. 서로 ‘여기서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여기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작품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했죠.
촬영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는지.
3화에서 제가 택시에 납치되는 장면이 있어요. 앞부분은 남해에서 선배님들이 먼저 촬영하고 제가 나중에 가서 찍었거든요. 도착했는데 감독님이 저를 보시더니 “은남아!” 소리치면서 “왜 이제 왔어! 우리 얼굴 좀 봐, 시커멓게 다 탔어!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하시는 거예요.(웃음) 그 말을 듣고 찡하면서 너무 반가웠어요. 실제로 오랜만에 뵀거든요. 돈독함을 느끼는 순간이었죠.
‘본방 사수’도 했나요?
그럼요.
자신의 연기 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편인가 봐요.
예전에는 민망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오히려 진지하고 냉정하게 보게 돼요. 모니터링하는 느낌으로. 보면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생각하고 고민해요.
<보물섬>은 지난해 여름에 시작해 올해 2월까지 촬영한 작품이에요. 처음 긴 호흡으로 드라마 작업을 하면서 어떤 걸 느꼈는지 궁금합니다.
한동안 은남이처럼 생각하고 살았어요. 노래를 들으면 가사가 꼭 동주가 은남이한테 해주는 말 같기도 했죠. ‘극 중 어떤 장면에 이 노래를 쓰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 노래가 뭐였어요?
해리 스타일스의 ‘Matilda’요. 마틸다에게 ‘놔둬도 돼. 파티 열어도 돼. 가족은 초대 안 해도 돼. 그들은 사랑을 안 줬잖아’ 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란 식으로 위로하는 내용의 가사가 나와요. 들으면서 은남이의 가정환경이 생각나더군요. (박) 형식 선배님한테도 이야기했어요. 동주가 하는 이야기 같다고. 선배님도 들어보더니 거의 테마 곡이라고 공감하셨죠.(웃음)
오랜 시간 촬영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어요?
체력적으로 지칠 때는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았죠. 모두가 함께 가고 있는데 내가 민폐가 될까 봐 더 책임감을 느꼈어요. 은남이랑 성향이 다른데 어느 순간 스스로 차분해진 걸 느끼기도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낙천적인 원래 성격과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할 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앞서 이야기했듯 긴 시간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냉정해졌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그걸 끄집어내려고 했죠. 조금 더 깊고, 길게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리고 우연히 다시 본 영화 <노트북>이 도움이 됐어요. 원래도 좋아하는 영화거든요. 촬영하다 잠시 쉴 때 봤는데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너무 동주와 은남이 같았어요. 부잣집 딸인 여자와 평범한 남자가 서로 잊지 못하고 애절하게 사랑하는 이야기예요. 함께할 때 가장 자유로운 둘의 모습도 비슷하더군요. 공교롭게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연기에 도움을 얻었어요.
극 중에서 재밌는 관계도 있던데요. <보라! 데보라>에서 연인이던 주상욱 배우가 은남의 어린 시절 아빠로 나와요.
그러니까요!(웃음) PD님한테 처음 듣고 ‘내 드라마 역사상 첫 연인인데 아버지가 되다니’ 속으로 생각했어요. 사실 <보물섬>에서 붙는 신은 없어요. 세트장에서 뵀을 때는 <보라! 데보라>의 상대 이름으로 “상진 님!” 하고 불렀죠. 선배님이 “잘돼서 좋다. 그때도 내가 잘될 거라고 했잖아”라면서 응원하고 격려해주셨어요.
<러닝메이트>에서는 까탈스러운 전교 1등이지만 전교학생회 선거 러닝메이트로 함께하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윤정희’ 역을 맡았어요.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걸 봤는데 팀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더군요.
또래와 촬영해서 너무 즐거웠어요. 아직도 자주 만나요. 사이가 돈독해서 가볍게 카페도 가고 저녁도 먹으러 가요. 누가 공연하면 같이 보러 가기도 하고요. 주로 윤현수, 이정식, 최우성 배우들과 만나고, 극 중 반 친구들도 시간 되면 합류해요. TV에 친구가 나오면 신기할 시기여서 누가 나오면 서로 촬영해서 보내고, 길 가다 또 누가 찍은 광고가 보이면 셀카 찍어서 ‘단톡방’에 올립니다.(웃음)
“꼭 배우를 해서라기보다 지금 하는 일을 즐기고,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길을 찾는 열쇠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다른 일을 이렇게 했다면 그것도 길을 잘 가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래인 데다 다들 신인이라 서로 많이 의지도 되겠어요. 앞으로 공개 예정인 드라마 <당신의 맛>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화려하고 자존심 강해 보이지만 사실 자존감 낮은 셰프 역을 맡았어요. 강하늘 선배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직원이에요. 대표가 자꾸 서울에서 일하는 나보다 전주 시골에서 일하는 셰프 보고 잘한다고 해요. 그 셰프를 막 질투하죠. 드라마 자체가 발랄해서 <보물섬>과는 또 다른 분위기로 재밌게 찍었어요.
원래 교사가 꿈이어서 교생 실습도 하고 입학처 근로학생으로 일하면서 교직원도 잠시 꿈꿨다가, 배우 제안을 받고 오디션을 거쳐 현재는 배우가 됐어요. 다양한 경험이 연기할 때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보라! 데보라>에서는 인턴 직원 역을 맡았잖아요. 근로학생 때와 포지션이 비슷했어요. 업무상으로는 간단하지만 꼼꼼히 일해야 했죠. 그때의 내 모습을 많이 떠올렸어요. 근로학생 때 사무실에서 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도 생각났죠. “네가 여태껏 공부하고 일하면서 다진 성실함과 꾸준함이 배우 일 할 때도 빛을 발할 거야”라고 해주셨어요.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은 마음에 교사를 꿈꿨다고 했어요. 배우로 전향했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것 같아요.
동의해요. 배우가 돼서 사람들한테 알려지면 빠르고 효과적으로 내가 바라던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게는 착하게 살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죠? 나중이지만 공익 캠페인에 참여할 수도 있고요.
이미 소속사 식구들과 함께 유니세프 화보에도 참여했잖아요.
맞아요. 회사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선배님들이 많이 계세요. 좋은 일이라면 모두 앞장서죠. 저도 보고 많이 배워요.
업으로 선택한 배우는 어떤가요? 또 본인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워낙 친구들 앞에서 재롱을 자주 부렸어요. 그 스케일이 커졌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저를 유독 재미있어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 앞에서 웃기려고 호들갑 떨고, 성대모사도 하고 그랬어요. 연기란 작품이라는 큰 숲이 있지만 정작 나무 하나만 딱 보고 집중해야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 대사가 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테이크를 여러 번 반복해도 처음 듣는 말처럼, 처음 하는 말처럼 하려고 해요. 찍을 때는 기술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거죠. 좀 더 멀리서 보면 연기는 정말 혼자 하는 게 아니에요. 독백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촬영하다 보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거든요. 거기에 빠르게 반응하고 적응하는 게 연기임을 이번에 <보물섬> 찍으면서 또 느꼈어요. 여전히 어렵지만요.
한 인터뷰에서 홍화연에게 보물섬이란 ‘그곳으로 향하는 길 그 자체’라고 했어요. ‘길이 있다는 사실만 알아도 절반은 간 것’이라고 했는데, ‘배우’라는 길을 찾았으니 본인의 인생에서도 절반의 목표는 이룬 셈일까요?
꼭 배우를 해서라기보다 지금 하는 일을 즐기고, 열심히 할 수 있는 힘이 길을 찾는 열쇠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다른 일을 이렇게 한다면 그것도 길을 잘 가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해했어요.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한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니까요. 지금 일을 하면서 행복하다는 의미로 들리네요.
맞아요.(웃음)
그럼 배우로서 어려울 때는 없나요?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고 혼란스러울 때도 있어요. 나도 모르게 남들과 비교하거나 ‘더 열심히 할걸’ 자책할 때도 있죠. 하지만 거기에 오래 머물러 있지는 않아요. 그런 감정이 들면 ‘더 잘 준비하고 발전해야지’ 마음먹어요. 후회하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툭툭 털고, 울고 싶으면 한 번 울고 끝내버려요.
건강한 자세네요. ‘후회하지 말자’라는 신념으로 연기에 도전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을까요?
저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매 순간 진심을 다하려고 해요. 뭔가 결정을 내릴 때는 충분히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책임져요. 좀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크게 후회하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어느 정도 믿으려고 해요. 잘한다고 해주면 그걸 그대로 믿고, 부족한 점을 말해주면 기꺼이 수용하고요.
올해 목표가 있나요?
철이 더 들면 좋겠어요. 가족한테 더 잘하고, 주변 사람도 잘 챙기고 싶어요. 책도 많이 읽으면서 내적 성장을 하고 싶습니다. 작년 여름 이후로 촬영하면서 바쁘게 지내느라 그런 부분을 잠시 놓쳤어요. 이제 20대 후반이니까 성숙해져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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