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INTERVIEW MORE+

오! 나의 무기여 #권오준

오랫동안 써온 일기장, 인상적인 순간들을 모아둔 클라우드, 손에 익은 붓과 펜. 창작자의 습관을 지켜온 오래된 그 무엇. 우리는 창작 무기라 부른다. 필름 메이커, 뮤지션, 미술감독까지. 창작자들을 만나 그들의 무기를 들여다보고, 그 무기로 어떻게 싸워왔는지 듣는다.

UpdatedOn July 31, 2022

/upload/arena/article/202207/thumb/51562-493770-sample.jpg

필름 메이커 권오준
+
메모


권오준은 영상을 만든다. 주로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 영상, 광고 영상이다. 힙합 신의 전설들, BTS 등 글로벌 K-팝 스타, 새로운 감각의 뮤지션 모두 그를 기다린다. 권오준의 힘은 메모에 있었다.


우리는 흐르는 강물 위에 떠 있다. 보고 듣는 경험은 물 위에서의 일이지만, 그것이 내재화되어 나를 형성하는 것은 물속의 일이다. 지금의 생각, 느낌, 머릿속에서 반복되는 이미지와 문장은 수면 아래서 희미한 형체만 드러났다 사라진다. 그것이 무의식이고, 창작의 원천임을 깨달았다면 놓치지 말고 잡아둬야 한다. 어떻게? 메모로.

필름 메이커 권오준은 메모하는 습관을 지녔다. 고등학생 때부터 메모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그의 습관은 꽤 오래되었고, 방대한 아카이빙을 이룬다. 그는 무엇을 메모할까. 메모는 어떻게 그의 무기가 되나? “꿈에 비주얼이 보일 때가 있어요. 뮤직비디오 트리트먼트 제작을 위해 곡을 며칠 동안 반복해 들으면, 그 곡이 꿈속에서 이미지로 발현됩니다. 잠에서 깨면 꿈이 날아가지 않도록 바로 메모하죠. 메모가 뮤직비디오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에게 메모는 무의식을 저장하는 방법이고, 또 자신만의 무의식을 불러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소스가 되기도 한다. 휴대폰이나 종이, 손에 잡히는 그 무엇으로든 그는 문득 떠오른 것들을 잡아둔다. 영감을 포섭하는 방식은 문장이다.

권오준은 타투이스트였다. 그의 팔은 타투로 가득하다. 마치 메모장처럼 그는 무언가를 영구적으로 새기는 사람이다. 때로는 꿈에서 타투이스트를 만나기도 한다. “타투이스트를 따라 지하실로 내려갔는데, 그가 연쇄살인마였어요. 제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벽에는 문신이 새겨진 수많은 인피들이 걸려 있었죠. 문신이 새겨진 몸을 예술품처럼 전시하듯이요. 그 장면이 강렬하게 남았어요.” 짧은 이미지를 비주얼화하고, 그 비주얼들을 연결해 서사를 짜며 명분을 만드는 것은 그의 본업이다. 때로는 꿈이 아니라 문득 이미지가 떠오를 때도 있다. 뮤직비디오 제작을 의뢰받으면, 해당 곡을 며칠 동안 반복해 듣는데, 최근 작업한 비비의 곡은 닷새째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길 한복판에서 메모하기 시작했다.

메모는 그의 힘, 그의 재산이다.

메모는 그의 힘, 그의 재산이다.

메모는 그의 힘, 그의 재산이다.

뮤직비디오 작업을 위한 독특한 소품.

뮤직비디오 작업을 위한 독특한 소품.

뮤직비디오 작업을 위한 독특한 소품.

 

“그때는 날카로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마음을 갖지 않죠.
작업량이 많아질수록 부정적인 감정 상태로 돌아가기에 작업량을 줄이고 있어요.
새로운 제가 되기 위해서요.”

 

뮤직비디오는 길어야 5분 남짓. 그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 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다. 그는 작업을 확장하고픈 욕구가 생겼다. 즉, 이야기를 만드는 것. 뮤직비디오보다 긴 호흡의 스토리텔링이다. “메모장에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썼어요. 금액과 아이데이션도 꼼꼼하게 적었죠. 다이나믹 듀오 형들과 작업한 뮤직비디오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럼 그 뮤직비디오가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거죠.”

그는 휴대폰 메모장을 보여주며 스크롤을 당겼다. 한참이나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인생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언젠가 메모의 끝에 도달하면, 그는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텍스트로 존재하는 그때의 자신을 마주하면 어떤 기분일까? “가끔 보면 안쓰러워요. 메모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하거든요. 일기보다는 업무 아이디어를 기록한 거니까. 감정이 격할 때 쓴 것도 있어요. 전 술도 안 마시고, 흡연도 안 해요. 힘들 때 풀 거리가 없어서 대신 메모를 해요.” 창작의 귀신에 들린 것처럼 메모하는 그이지만, 사실은 힘듦을 토로했다. 영상 작업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두 달이 소요된다. 일정은 겹쳐가며 계속된다. 창작이 잘되는 감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 상태로 자신을 몰아붙인다. 그것이 좋지 않은 작업 방식임을 알지만, 창작을 향한 그의 열정은 너무 컸다.

갓세븐의 사인과 추억이 담긴 아이템들.

갓세븐의 사인과 추억이 담긴 아이템들.

갓세븐의 사인과 추억이 담긴 아이템들.

다양한 질감의 카메라들.

다양한 질감의 카메라들.

다양한 질감의 카메라들.

적개심은 어떻게 창작이 되는가? 2000년대를 소년으로 지나온 그는 억압된 상황에 불만을 갖고 살았다. 힘든 가정과 경제 상황에서 그는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글과 타투, 영상에 적개심을 담았다. “그때는 날카로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마음을 갖지 않죠. 작업량이 많아질수록 부정적인 감정 상태로 돌아가기에 작업량을 줄이고 있어요. 새로운 제가 되기 위해서요.”

그는 2차 창작자의 위치에 있다. 폭력의 미학을 애정하는 그가 자신의 성향에 맞춰 1차 창작물을 무시하고 새로운 걸 만들 수는 없다. 그가 제임스 코든 쇼에서 BTS의 ‘Dynamite’ 퍼포먼스 영상을 촬영할 때의 일이다. BTS는 희망을 노래하기에, 권오준의 성향을 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폭력적인 비주얼을 좋아하는 자신에게도 행복을 좇는 자아도 있음을 깨달은 작업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좋았어요. 제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음을 처음 깨달았죠. 영상에 개인적임 바람도 넣었어요. 프랑스에 사는 동생을 코로나19로 2년간 못 봤거든요. 비행기를 타고 등장하는 BTS를 보여주며, 우리의 일상이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담았어요.” BTS와의 작업은 전환점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권오준은 좋아하는 것을 쫓으며 살았다. 흑인 음악이 좋았고, 타투가 멋있어 보였고, 영화가 좋았다. 흑인 음악과 타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상을 만들다 보니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었다. 이제는 이야기를 만들 차례다. 소재는 그의 메모에 가득 준비됐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안승현
Make-up 채현석

2022년 08월호

MOST POPULAR

  • 1
    Dear My
  • 2
    구찌 X 박재범
  • 3
    재주 소년 차강윤
  • 4
    CCWC 2025써머 룩북 컬렉션 공개
  • 5
    정경호의 선택

RELATED STORIES

  • INTERVIEW

    MINOR DETAILS #한승우

    아티스트 한승우에게 사소로운 질문을 전했다.

  • INTERVIEW

    재주 소년 차강윤

    데뷔한 지 1년 차에 주연 자리를 꿰차고, 차차기작을 쌓아둔 신인. 초롱초롱 뚜렷한 눈빛에 총기가 좋은 그의 목표는 오스카상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무궁무진 찬란하게도 빛나는,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차강윤과 나눈 대화.

  • INTERVIEW

    홍화연이 향하는 길

    후회하지 말자. 교사가 꿈이던 홍화연을 배우로 이끌어준 말이자 여전히 그를 움직이게 하는 신념이다. 실제로 만난 홍화연은 <보물섬> 속 은남을 어떻게 연기했나 싶을 정도로 밝고, 맑았다. 그런 그를 보고 있노라니 앞으로 분할 캐릭터들이 더 기대됐다. 어떤 얼굴로도 금세 변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 INTERVIEW

    정경호의 선택

    아이고, 반갑습니다. 스튜디오에 들어온 배우 정경호가 10년 지기처럼 두 손을 내밀고 인사했다. 물론 우린 처음 보는 사이다. 정경호는 그렇게 사람을 대하는 배우다. 함께하는 사람을 우선하는 배우. 좋은 연기는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배우. 곁에 있는 연인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연기하는 배우. 정경호의 선택에는 사람이 깔려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결과 또한 좋다.

  • INTERVIEW

    그곳에 소지섭이 있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대신해 총탄을 맞고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그 남자. <사도>에서 조선의 왕이 되어 구슬픈 춤을 추던 그 남자. <주군의 태양>에서 귀신들의 원혼을 풀어주던 그 남자. 지난 28년간 우리를 울고 웃게 했던 장면 속에는 소지섭이 있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으로 돌아온 배우, 소지섭을 만났다.

ARENA FILM MORE+

MORE FROM ARENA

  • INTERVIEW

    NCT 도영, "음악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NCT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해요."

    NCT 도영의 <아레나> 11월호 커버 미리보기

  • LIFE

    가길 잘했다, 남해

    남해의 쾌청한 뷰와 진한 감성을 자랑하는 5곳.

  • DESIGN

    This is the New Year

    8명의 사진가가 바라본 새해라는 피사체.

  • FILM

    '아이템 부자' 대휘와 매일 함께하는 가방 속 아이템!

  • LIFE

    만화책을 좋아하세요?

    수소문 끝에 찾아낸 만화책 마니아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인생 만화는 무엇입니까? 그 만화책은 왜 특별합니까?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