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INTERVIEW MORE+

홍콩 누아르의 맛

돼지고기와 함께 볶은 안남미를 퍼먹으면서 나는 홍콩의 거리를 느꼈고, 홍콩 누아르의 주인공이 됐다.

UpdatedOn March 27, 2018

3 / 10
/upload/arena/article/201803/thumb/38002-288095-sample.jpg

 

 

  • 김주환의 푸드 파이트
    김주환은 지난해 <청년경찰>로 행복한 한 해를 보낸, 패기 넘치는 영화감독이다. 요즘은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영혼을 살찌울 음식을 파이팅 있게 찾아다닌다.

 

다소 진부한 표현이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2018년이 지나가고 있다. 정말 눈을 깜빡하기만 해도 시간이 훅훅 지나간다. 계속해서 다음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어느 날 탈고를 하고 텅 빈 마음으로 카페에 멍하니 앉아서 작년 한 해를 돌아봤다. 모든 것들이 다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홍콩에서 보낸 며칠이 생각났다. 영화 <청년경찰>의 홍콩 개봉을 위한 프레스 투어 일정이었다. 아마 르네상스 호텔에 머물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주최 측에서 글쎄, 나에게 스위트룸을 제공해줬다. 너무나도 넓고 멋진 방이었다. ‘내게 이런 방을 주다니’ 하고 혼자 감격하고 있었는데 이튿날 내 방은 기자들과의 인터뷰 룸이 됐다. 어쨌든 하루 종일 숙소에 갇혀 인터뷰를 하는데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중간에 딤섬과 볶음밥을 배달시켜 먹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맛있었다. 특히 볶음밥이 엄청 맛있었다. 돼지고기와 함께 볶은 안남미를 퍼먹으면서 나는 홍콩의 거리를 느꼈고, 홍콩 누아르의 주인공이 됐다. 호텔 방에서 홍콩의 진한 향기, 강호의 의리가 땅바닥에 떨어졌던 그 시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프레스 투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가끔 그 맛이 그리웠다. 그러던 와중에 여자친구와 ‘청키면가’를 찾았다. ‘청키면가’는 홍콩의 완탕면 명가가 한국에 진출한 음식점인데 음식이 제대로다. 따뜻한 국물에 꼬들꼬들한 계란면을 후루룩 넘기는 완탕면이 맛있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그곳에서 볶음밥만 먹는다. 그곳 볶음밥을 퍼먹으면 다시 한번 홍콩 거리를 느끼고, 홍콩 누아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맛도 맛이지만 가게 분위기 자체가 홍콩을 뚝 떼어다 서울 한복판에 옮겨놓은 것 같다. 일단 입구 간판의 빨간색 한자 네 글자부터 홍콩 누아르 느낌이 물씬 난다. <영웅본색> <첩혈쌍웅> 뭐 이런 영화들도 전부 다 네 글자니까. 좀 더 분위기를 파악하려면 가게 구석구석을 잘 살펴봐야 한다. 오픈 키친에서 흘러나오는, 홍콩에서 온 주방장들의 대화가 압권이다. 특히 주방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대머리 아저씨는 가만히만 있어도 카리스마가 폭발한다. 보고 있으면 <무간도>의 한 장면 같다. 그리고 채소를 다듬는 깡마른 아저씨가 있는데 이분이 미장센을 완성한다. 눈 감은 채 채소를 엄청 빨리 썰고 칼은 나무 도마 위에 던져 메다꽂을 것만 같다. 우리가 홍콩 영화에서 보고 느꼈던 특유의 바이브가 넘쳐흐르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청키면가’에서 밥을 먹으면 미식뿐 아니라 홍콩의 공기까지 느낄 수 있다. 홍콩에서 공수해오는(사실 확실하지는 않다만) 라조장은 정말 일품이다. 볶음밥에 살살 발라서 비벼 먹으면 이국적인 얼큰함을 느낄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정말 최고다. 계산대에서 작은 병을 5천원에 팔길래 순간 살까 고민도 했는데 왠지 이 소스는 안남미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거 같아서 참았다. 이천 쌀밥에는 그 소스가 안 맞을 것 같다. 그래서 홍콩을 느끼고 싶은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면 ‘청키면가’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아이 러브 잇!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서동현
WORDS 김주환(영화감독)
ILLUSTRATION 유승보

2018년 03월호

MOST POPULAR

  • 1
    가길 잘했다, 남해
  • 2
    러너들이 선택한 길
  • 3
    Colorful Design
  • 4
    데이비드 베컴, 보스와 함께한 첫 번째 디자인 협업 컬렉션 출시
  • 5
    '열심히', '꾸준히'를 습관처럼 말하는 준호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

RELATED STORIES

  • INTERVIEW

    완벽함과 유연함 사이의 이준호

    어느덧 17년 차. 수많은 노래와 배역 사이를 이준호는 치열하게 오갔다. 완벽함을 바라는 마음은 그를 시종일관 몰아붙였다. 그의 노력에 걸맞게 팬들의 환호는 지구 반대편에서도 울려 퍼졌다. 그렇게 달려가던 이준호는 이제 유연함을 바라본다. 완벽에 다다르는 길이 하나만 있지 않기에.

  • INTERVIEW

    소지섭, "좋은 배우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믿습니다."

    배우 소지섭의 <아레나> 5월호 화보 및 인터뷰 미리보기

  • INTERVIEW

    박재범, 반려견 오스카와 함께 한 <아레나 옴므 플러스> 디지털 커버 공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와 박재범이 함께한 <아레나> 디지털 커버 미리보기

  • INTERVIEW

    차강윤, "나중에는 꼭 연출을 하고 싶습니다. 일단 연기로 인정받아야죠.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요."

    배우 차강윤의 <아레나> 5월호 화보 및 인터뷰 미리보기

  • INTERVIEW

    홍화연, "매 순간 진심을 다하려고 해요. 뭔가 결정을 내릴 때는 충분히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책임져요."

    배우 홍화연의 <아레나> 5월호 화보 및 인터뷰 미리보기

MORE FROM ARENA

  • FASHION

    주목할 만한 시선 #FENDI

    펜디가 서울의 럭셔리 리테일 중심지로 손꼽히는 청담동에 한국 첫 플래그십 부티크인 팔라초 펜디 서울을 오픈했다.

  • FASHION

    런웨이에서 찾은 기발한 아이템 10

    남다른 균형 감각을 뽐내는 기발한 상상력의 런웨이 히든 아이템.

  • INTERVIEW

    이근은 살아남는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암벽을 올라가고, 사막을 달리는 남자. 이근 대위는 타고난 군인이자 생존 전문가다. 흔들리지 않는 뚝심으로 특수부대라는 목표를 이뤄내고, 지옥 훈련을 두 번이나 경험하며 강화된 캡틴 코리아다. 액션 영화만 보는 눈물조차 없는 이근은 지금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치열한 미디어 세계에서 생존을 숙고 중인 그를 만났다.

  • REPORTS

    남자들은 왜

    남자와 여자가 편을 갈라 싸우고 있다. 특정 사건이 촉발한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기엔 생각해볼 문제가 참 많다. 그래서 ‘왜?’라는 질문을 던져봤다. 지금 우리는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혐오하는가.

  • FASHION

    루이 비통의 유머와 위트

    과거와 현재의 리듬이 고루 뒤섞인 하루.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