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CAR MORE+

페라리 타는 날

페라리를 탔다. 이 말은 누군가에겐 꿈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UpdatedOn June 20, 2017

3 / 10
/upload/arena/article/201706/thumb/34909-236200-sample.jpg

 

 

GTC4루쏘 T를 파악하겠다는 것 자체가 오판이었다. 비록 실린더가 줄었더라도 V8 터보 엔진은 넘치는 출력을 자랑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같은 GTC4루쏘 T의 품에서 마냥 즐길 뿐이었다.
(내 딴에는)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차를 코너로 던져도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엔초 페라리가 말했다. “페라리는 모두에게 꿈이다.” 페라리 창업자가 한 말이기에 면구하지만, 그럴듯하다. 자동차를 단지 이동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 얼마 전에 그 꿈을 즐겼다. 페라리를 인제 서킷에서 탔다. 짧지만 화끈한 꿈이었다. 작년에는 페라리를 이탈리아에서 탔다. 운치 있는 꿈이었다. 작년과 올해, 붉은빛이 가득한 꿈속을 들고난 셈이다.


올해 꿈결 같은 시간은 GTC4루쏘 T와 함께했다. 작년에는 GTC4루쏘와 함께했다. 잘못 반복한 게 아니다. 잘 보면 T가 있고 없다. T는 터보(Turbo)의 머리글자다. GTC4루쏘 T는, 그러니까 GTC4루쏘에 터보 엔진을 달았다는 뜻이다. 단, 실린더를 네 개 덜어냈다. V12에서 V8로. 실린더를 네 개나 덜어냈는데 출력은 아주 조금 덜어냈다. 페라리다운 다운사이징 모델이다.
페라리 관계자는 둘의 관계를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모델을 내놓는 심정으로 GTC4루쏘 T를 공개했다고. 보통 엔진 배기량 줄이고 가격 내려 엔트리 모델로 선보인다. 하지만 페라리는 성격을 달리한 차라고 말한다. 그것만 바뀐 게 아니다. 사륜구동에서 후륜구동으로 바뀌고, 더불어 무게도 줄었다. 배기량 차이를 떠나 자연흡기 엔진과 터보 엔진 성격 차이도 있다. 크기와 생김새가 같은 두 차인데도 질감이 다를 요소가 생긴다. 관계자 말을 이해했다.


사전 지식을 습득하고 GTC4루쏘 T를 탔다. 감각을 예리하게 벼렸다. 둘이 뭐가 다를까. 기억을 더듬었다. 작년 7월,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굽잇길에서 선보인 안정적인 몸놀림이 스쳐갔다. 인근 터널에서 토해낸 사자후 같은 배기음도 떠올랐다. 외관과 실내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서킷으로 들어가며 마른침을 삼켰다. 차든, 운전자든 서킷에선 발가벗겨진다. 서킷에서도 그때 그 안정감과 풍성함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확실히 시골 굽잇길과 서킷 코너는 비교할 수 없었다. 통제된 공간이라는 조건이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다. 이탈리아 터널의 사자후는 코너를 벗어날 때마다 터져 나왔다. 터널의 공명 효과가 없어도 짜릿함은 여전했다. 코너에 뛰어들 때 속도감이 곱절이었으니까. 코너와 코너, 진입과 탈출이 반복되자 애초 목표는 점점 희미해졌다. 


GTC4루쏘 T를 파악하겠다는 것 자체가 오판이었다. 비록 실린더가 줄었더라도 V8 터보 엔진은 넘치는 출력을 자랑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같은 GTC4루쏘 T의 품에서 마냥 즐길 뿐이었다. (내 딴에는)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차를 코너로 던져도 한계가 보이지 않았다. 한계를 보긴 했다. 내 실력과 담력. 단지 자기 한계 안에서 즐기는 게 최선이었다. 

GTC4루쏘 T는 그만큼 품이 넓은 그랜드 투어러였다. 서킷에서 내던졌는데도 여유롭게 받아쳤다. 그러면서 조금 더 용기를 내보라고 북돋았다. GTC4루쏘 T의 부름에 응할 실력이 없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GTC4루쏘와 GTC4루쏘 T의 가격 차는 1억 남짓. GTC4루쏘 T가 적은 쪽이다. 물론 덜어내도 3억원대지만. 그럼에도 왠지 후하게 이득 보는 기분이다. GTC4루쏘 T가 품은 역량을 겪어보면 이상한 숫자 관념에 빠진다. 뭐에 홀린 듯이. 아, 그래서 엔초 페라리가 꿈이라고 했나.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김종훈

2017년 06월호

MOST POPULAR

  • 1
    엘 그리고 김명수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
  • 2
    지치고 힘들 때 꺼내볼 믿고 보는 배우 진영의 카운슬링
  • 3
    러너들이 선택한 길
  • 4
    소지섭, "좋은 배우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믿습니다."
  • 5
    정경호, "저는 항상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RELATED STORIES

  • CAR

    이토록 멋진 퍼레이드

    12칠린드리 스파이더의 시동을 거는 순간, 주위에 사람들이 몰린다. 페라리가 기획한 퍼레이드에 동참하는 기분이다. 그냥 운전하는 것뿐인데. 그런 점에서 12칠린드리 스파이더는 퍼레이드에 제격이다. 원래 퍼레이드는 지붕 없이 오가니까.

  • CAR

    Colorful Design

    색으로 보나 디자인으로 보나 다채로운 자동차 넉 대.

  • CAR

    Less, But Better

    볼보가 EX30을 선보였다. 기존에 없던 신모델이다. 형태는 소형 전기 SUV. 접근하기 편하고 쓰임새도 많다. 그러니까 EX30은 성장하는 볼보에 부스트를 달아줄 모델이란 뜻이다. EX30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 CAR

    유용하거나 탐스럽거나

    작지만 알찬 자동차. 크고 화려한 자동차. 둘을 놓고 고른다면 답이 빤할까. 둘을 비교하면 그럴지도 모른다. 비교하지 않고 순서대로 타보면 또 다르다. 저마다 이유가 있고 역할이 나뉜다. 전기차 중에서 작고 알차거나 크고 화려한 두 차종을 연이어 타봤다.

  • CAR

    페라리의 세계

    페라리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우니베르소 페라리’에서 새로운 슈퍼카 F80을 선보였다. 창립 80주년을 기념하여 발매한 차량으로 1984 GTO와 라페라리 아페르타의 계보를 잇는다. 전 세계를 무대로 페라리의 헤리티지를 선보이는 전시에서 레이싱카의 영혼을 담은 로드카를 아시아 최초로 만나보았다.

MORE FROM ARENA

  • FASHION

    깨우는 향

    느슨했던 감각을 산뜻하게 일깨우는 룸 스프레이와 디퓨저.

  • DESIGN

    Hand Over

  • FASHION

    HOLD ON TO THE AFTERGLOW

    적막한 빛의 여운만이 남은 자리에 드러난 에르메스 2023 F/W 컬렉션의 윤곽.

  • FASHION

    Everything Is Recorded

    낙원처럼 아름다운 구찌 러브 퍼레이드 컬렉션으로 수놓은 밤.

  • FASHION

    모델들의 OOTD

    런웨이 밖에서 포착한 모델들의 일상적인 오프 듀티 룩.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