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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뮤지엄

공간 사옥을 매입해 지은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 이어 제주에도 아라리오뮤지엄이 문을 연다. 무려 세 군데나.

UpdatedOn November 25, 2014

아오노 후미아키 ‘동문모텔에서 꾼 꿈’ Mixed Media, 2014.

아라리오뮤지엄이 10월 1일 제주에 개관했다.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아라리오뮤지엄 탑동바이크샵,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세 곳이다. 내년 3월에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도 문을 열 예정이다. 탑동시네마와 동문모텔에선 주식회사 아라리오의 창업자 김창일이 수집한 아라리오 컬렉션이 전시되고, 탑동바이크샵에선 한 명의 작가를 집중 조명하는 전시가 열릴 계획이다. 지금 탑동시네마와 동문모텔에서 개관전 가, 탑동바이크샵에선 김구림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각 건물은 소위 재생되었다. 탑동시네마는 2005년까지 극장이었다.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제주도에 진출한 이후 경영 상태가 나빠져서 문을 닫았다. 아라리오뮤지엄이 이 건물을 매입해 공간을 보존하면서 8m 높이에 달하는 거대 규모의 전시실과 작은 전시실이 공존하는 뮤지엄으로 재탄생시켰다. 탑통바이크샵은 바이크 매장, 이벤트 회사, 여행사 등 상업 시설로 사용되던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이었다. 이 건물 역시 원래의 내부 형태를 가능한 복원하는 선에서 전시 공간으로 개조했다.

코헤이 나와 ‘사슴가족’ Mixed Media, 2014.

이 아저씨가 김창일
아라리오뮤지엄의 김창일 회장은 주식회사 아라리오의 창업자다. 35년간 현대 미술 작품을 수집했다. 한국의 근현대 작품을 주로 수집하다가 영국의 YBAs, 독일 라이프치히 화파 등으로 범주를 확장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중국과 인도, 동남아 작가들의 작품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의 미술 잡지 <아트뉴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에 7년째 이름이 오르고 있다. 기분이 좋으면 사람이 많아도 목청껏 노래를 부른다. 씨킴이라는 이름으로 작가 활동도 하고 있다.

동문모텔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여관으로 영업하던 건물이었다. 일정하게 구획된 모텔의 객실은 개별적인 전시장으로 바뀌었다. 방 사이를 이동하다 보면 미로 같은 인상도 받게 된다. 세 곳의 아라리오뮤지엄에는 물론 굉장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탑동시네마에는 설치가 까다로운 거대 작품인 장환의 ‘영웅 No. 2’와 인도 작가 수보드 굽타의 20m가 넘는 작품 ‘배가 싣고 있는 것을 강은 알지 못한다’가 전시되고, 동문모텔에는 채프먼 형제, 앤서니 곰리와 같은 거장의 작품이 전시된다. 동문모텔의 흔적을 소재로 상상을 덧붙인 일본 작가 아오노 후미아키의 ‘동문모텔에서 꾼 꿈’과 한국 작가 한성필의 ‘해녀 시리즈’도 전시된다.


아오노 후미아키와 한성필은 개관 전시를 위해 제주에 머물며 작품을 만들었다.
탑동바이크샵에 전시된 김구림의 작품도 설명이 필요 없는 명작들이다.

그런데 어떤 작품 못지않게 훌륭한 작품은 아라리오뮤지엄이다. 공간을 복원하고 다시 구성한 뮤지엄이 한국에는 별로 없다.
그나마 대부분 규모가 작은 곳이다. 자본력이 있는 뮤지엄이나 기업, 단체는 새로 짓는다. 그들은 무엇인가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근본을 지우고 낯선 근본을 확립하는 일, 마치 그들 자신이 시조가 되겠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름의 정당성이 있다면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제주의 아라리오뮤지엄은 비생산적으로 지어졌다. 아라리오 뮤지엄의 김창일 대표는 각각의 건물을 구입한 가격보다 많은 돈을 공간을 유지하며, 공간 그 자체로 돋보이게 만드는 데 썼다. 탑동시네마의 경우 매입가의 3배에 가까운 돈을 건물을 보존하는 데 사용했다.

우고 론디노네 ‘유성의 어두운 흐름을 지나’ Rejin, Semi-transparent, 2004.

아라리오뮤지엄이 지키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모든 작품은 과거에서 온다. 그런데 공간은 왜 늘 현대적이기만 할까? 더불어 이 세 군데 뮤지엄은 제주의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 놓인 게 아니라 제주 구도심의 버려지고 방치된 건물들 속에 있다. 미술 작품은 보기에 좋은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공간은 그렇지 않다. 가능하다면 공간은 목적과 기대를 품고 있어야 한다. 굳이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출 필요는 없지만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의 시대적 요구를 따져 적자면 음풍농월식의 그것은 아니다. 적어도 아라리오뮤지엄은 도시 재생에 대한 의지를 품고 있다. 건물 외관은 모두 붉은색이다. 그것은 태양 같고, 꿈에 대한 의지 같기도 하며, 생명 같기도 하다.

김병호 ‘방사형 분출’ Aluminum, Piezo, Arduino, Sound, 2011.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아라리오뮤지엄 탑동바이크샵,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은 이름을 지은 형식만 같은 게 아니다. 전시 공간을 다루는 인식이 같다. 벽면을 온통 하얀색으로 칠한 전시 공간은 이곳에 없다. 그러나 하얀 벽면의 미덕을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하얀색이 아니라 작품, 작품이 지닌 가능성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다. 공간은 단순히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조명이 개입하고, 공간이 놓인 위치, 그곳의 오랜 역사가 개입하며, 어쩌면 그곳의 날씨가 개입한다. 아라리오뮤지엄은 드물게도 이러한 요소들을 어찌됐건 질문하고 있다.

editor: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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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우성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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